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널드 리 어메이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1944년 3월에 캔자스에서 태어났다. 어린시절엔 반항기가 좀 있었는지 17세에 2건의 형사사건을 일으켜 [[경찰]]에 입건되는 등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다. 하늘이 도왔는지 자상한 형사재판부 판사로부터 교도소로 수감되는 대신 군 입대를 권유받아 군대를 택했고,[* 21세기에야 죄지으면 그냥 얄짤없이 형사범이지만 50년 전 당시는 냉전기라서 군인이 워낙 부족하고 워낙 많은 일들이 원칙없이 처리되던 그런 시기, 한국식으로 말하면 소위 말하는 쌍팔년도식이다 보니 술 먹고 사고치거나 하는 정도로 죄질이 심각하지 않은 그냥 동네 불량배들 정도면 빨간줄 그일래 정신도 차릴 겸 군대 갈래 해서 군대에 집어넣는 경우가 흔했다. 사실 지금도 군인은 모자라고 하다 보니 미국 깡시골마을쯤에서는 가끔 있다. 한국에서도 1980년대까지는 폭력배나 학생운동가들을 전방부대로 보내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. 대표적인 케이스가 학생운동하다 특전사로 끌려간 [[문재인]].] 아버지가 복무 중인 해군에 지원했으나, 해군에서 서류 탈락 후 1961년 해병대 항공병으로 입대한다. 이후 군대가 적성에 잘 맞았는지 18개월의 의무복무기간을 마친 뒤에도 남아서 해병대 항공[[부사관]]이 되었다. 그리고, 상병 때인 1965년 해병대 부사관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해병대 훈련교관(D.I.)에 지원, 1967년까지 미 해병대 샌디에이고 교육단 제3신병교육대대 India 중대 훈련교관으로 3년간 근무했다. 1968년 일본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대 제1해병항공단 제17해병항공지원전대로 전근. 소속 부대가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는 바람에 14개월간 비행장 지상근무 요원으로 월남전 파병을 다녀오기도 했다. 일본에서 E-6(Staff Sergeant, 하사)까지 승진하지만 근무 중 수차례 부상을 이유로 1972년 의병 제대하였다.[* 후방 비행장 근무 중 부상 입을 일이 뭐가 있을까 싶겠지만 항공지원전대는 시설특기로 시설물 공사를 많이 하기 때문에 근무 중 부상자가 드물게 있는 편이다.] 제대 후에는 다시 방탕한 생활로 돌아가서 군에서 모은 돈으로 부대 근처인 일본 오키나와에 술을 파는 성매매업소를 차렸다. 그러나 일본에서도 매춘은 불법이었기에 그는 곧 일본 경찰의 수사망에 걸렸고, 검거를 피해 일본을 탈출하여 필리핀으로 도피한다. 필리핀에서는 제대군인 지원 프로그램으로 학비지원을 받아 필리핀 국립 마닐라 대학을 다녔다. 대학 재학 중 필리핀인 아내를 만나 1975년 결혼을 하고, 필리핀 영화에 출연하는 등 다시 성실한 삶으로 돌아왔다. 해병대 복무 경험을 바탕으로 [[군]], 경찰이 주역인 영화에 자문 역으로 활동, 79년에는 <[[지옥의 묵시록]]>에서 비행자문 겸 단역으로 출연하고, 1987년 [[스탠리 큐브릭]]의 <[[풀 메탈 재킷(영화)|풀 메탈 재킷]]>에서 [[하트먼 상사|하트먼 중사]] 역을 맡아 '''소름끼칠 정도의 가공할 열연'''[* 극중 훈련생들 앞에서 절대 눈을 깜빡이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실제 미 해병대 교관들이 훈련생들을 교육시킬 때와 마찬가지이다. 이유는 훈련생의 기를 죽이기 위해서다.]을 펼치며 인지도를 높이는 것에 성공, [[배우]]로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.[* 비슷한 경우로 역시 미 해병대 출신 퇴역 [[대위]] [[데일 다이]](64군번으로 61군번 어메이 보다는 한참 후임)도 있다.] 사실 풀 메탈 재킷에서도 단순 자문역만 맡을 예정이었으나 리 어메이가 스탠릭 큐브릭을 찾아가서 교관 배역을 달라고 졸라서 따낸 것. 스탠리 큐브릭은 어메이의 인상이 착해보인다는 이유로 거절했는데, 어메이가 일어서라고 버럭 외치자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라 일어서면서 그가 교관 역할에 아주 잘 어울린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. [[파일:attachment/hartman2.png|width=250]] 미 해병대는 2002년 퇴역 하사인 그에게 [[명예]] 중사(Gunnery Sergeant) 계급을 부여했다. 이는 영화 풀 메탈 재킷에서 어메이의 극중 배역이었던 하트먼 교관의 계급이 중사였기 때문에 극중 계급이 수여된 것이다.[* 국내에서는 상사로 번역해서 상영되었다.] 미 해병대에서 민간인에게 명예 해병으로 계급을 부여하는 경우는 많이 있었지만 퇴역 해병에게 명예 계급을 부여하여 명예 진급을 시킨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. 풀 메탈 재킷이 미 해병대와 베트남 전쟁의 어두운 면을 다룬 영화지만 아무튼 크게 흥행해서 홍보에 도움이 되었다고 명예진급을 시켜준 것.[* 물론 영화 제작 당시에는 일체의 지원을 거부했다. 한편 풀 메탈 재킷과 아주 극명한 대비를 보여준 영화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'''[[탑건]]'''이다. 어디나 군을 부정적으로 그린 영화는 비슷한 대접을 받는데, 한국도 사정은 똑같아서 [[태극기 휘날리며]]도 처음엔 국방부에서 시원찮은 반응을 보였다가 영화가 흥행하자 홍보영상이나 정훈교육 등에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. R2B 리턴 투 베이스 역시 국방부의 전격적인 협찬을 받았다. ~~하지만 결과물은 탑건의 데드카피~~] 마치 [[수사반장(드라마)|수사반장]]에 오랫동안 출연한 [[최불암]]에게 [[대한민국 경찰청]]이 명예 경정계급을 준 것과 비슷한 사례이다. 참고로 최불암은 명예 [[치안감]]까지 진급했다. [[2018년]] [[4월 15일]], 캘리포니아 주 산타모니카에서 [[폐렴]] [[합병증]]으로 세상을 떠났다. [[https://twitter.com/RLeeErmey/status/985651917870202883/photo/1|#]] 수의로 미 해병대 예복을 입었다고 한다. [[2019년]] [[1월 18일]] [[알링턴 국립묘지]]에서 장례식이 치러졌고 그곳에 묻혔다.[[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MacqEVNZ7mM|영상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